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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트랙 앱 설치 및 주요 기능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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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트랙 앱이란? '에브리트랙' 앱은 원스토어에만 설치할 수 있는 하는 산행 지도 서비스 앱으로 전국의 산 정보와 등산코스를 지도에서 탐색하고, GPX 트랙을 확인하고 공유버튼을 눌러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산행 시 GPX 트랙이 필요하신 분들은 꼭 앱을 설치해서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서울 동관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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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관왕묘 정보 동관왕묘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관왕묘는 중국의 장수 관우(關羽: 162~219)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1601년(선조 34)에 지었다.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후기에 무묘를 많이 지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丁자 모양과 ㅡ자 모양이 합쳐진 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 벽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서울 남산의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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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정보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이 유적은 한양도성 남산 구간의 일부로 그동안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성벽구간이다. 전시관이 자리잡은 남산 자락은 한양도성의 오랜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한양도성 유적(1396)-조선신궁 배전 터(1925)-남산 분수대(1969)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 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오르GO함양 앱 설치 및 15대 명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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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GO함양 앱이란? '오르고GO함양'은 우리나라 백두대간 최고봉인 지리산과 덕유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 15개 명산을 모바일 「오르GO함양」 앱을 통해 산악 인증하는 프로그램인데요. 15개 명산은 지리산, 남덕유산, 금원산, 기백산, 월봉산, 백운산, 대봉산, 황석산, 삼봉산, 거망산, 영취산, 도숭산, 감투산, 삼정산, 와불산입니다. 

대한제국의 황궁인 서울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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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 정보 덕수궁(德壽宮, Deoksugung Palace) 터에는 월산대군(1454~1488)의 후손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관들의 저택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이 집들을 수용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였다가, 광해군이 1611년에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慶運宮)이 되었다. 이후 19세기 중엽까지는 궁궐로서 큰 역할이 없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로 삼았고 많은 전각들을 새로 세워 궁궐의 격식을 갖추어 나갔다. 또한 근대화를 향한 고종의 의지에 따라 궁 안에 여러 서양식 건물들을 세웠다. 그러나 1880년대 정릉동 일대는 각국 외교사절의 공관과 선교사들의 주택이 밀집해 있어서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기존의 미국·영국·러시아영사관 사이로 궁역을 확장하다 보니 대지의 모양이 불규칙하게 된 것이다. 1907년에 고종이 퇴위하면서 선황제의 거처가 되어 궁의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었으며,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궁역이 축소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북쪽 선원전과 서쪽 증명전 일대도 매각되어 원래 넓이의 1/3만 남게 되었다. 1933년에는 중심 부분과 몇 개의 양관(洋館)만 남고 대부분이 전각들이 철거된 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에 개방되었다. 현재는 중심부인 중화전 일원과 정관헌 및 석조전과 같은 양관들의 남아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과 구한말이라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으뜸 궁궐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상징적 공간이었다. 또한 전통 규범 속에 서양식 건축을 수용한 근대적 궁궐이며, 주변 상황의 공간적 맥락에 맞추어 조성한 도시적 궁궐이었다.

서울 북악산, 인왕산 연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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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악산, 인왕산 정보 1. 북악산(北岳山, 白岳山, 342m)  서울특별시의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342m).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으며, 일명 면악(面岳) · 백악(白岳) · 공극산(拱極山)이라고 한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으며 오직 삼각산 면악(面嶽)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 주산 줄기의 중심 큰 맥에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지형에 따라서 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의 내용과 『문헌비고』에도“백악을 일명 면악이라 한다. 북부에 있다.”라 하고, 또 『한경지략』에“ 백악이 도성 북쪽에 있는데 평지에 우뚝 솟아났고, 경복궁이 그 아래 기슭에 있다. 서울 도성을 에워싼 여러산 중에 이 산이 우뚝 북쪽에 뛰어나니 조선왕조 국초에 이 산으로 주산을 삼고 궁궐을 세운 것은 잘된 일이다.” 라는 내용을 통해 또 다른 이름들을 볼 수 있다. 백악은 1395년(태조 4)에 “한성의 북악인 백악산신(白岳山神)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아 국가에서 제사를 받들게 하니 그 사당을 백악신사라 하고, 이 신사가 있는 산을 백악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1537년(중종 32년) 명나라 사신 공용경에게 주산인 백악과 서쪽 인왕산의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백악을 북쪽 끝을 끼고 있다는 뜻으로 ‘공극(拱極)’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성부 도성 안, 궁성 북쪽에 있다. 앞에는 남산이 뾰족하게 솟았고, 뒤에는 북악산이 높도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북악 뒤편에 서울 도읍터의 지형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으로 구진봉(335m)이 있는데, 개가 쭈그리고 앉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준봉(狗樽峰)이라 하기도 한다. 관련 지명으로 북악터널이 있다. 2. 인왕산(仁王山, 338.2m)  서울특별시의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338.2m).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 “백악 서쪽에 있다.”하였다. 산명은 『광해군일기』 1613년(광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