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보길도 윤선도원림과 세연정(洗然亭) 정보
1. 보길도 윤선도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 명승 제34호)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유적이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격자봉(해발 435m)을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의 부용동지역에 원림문화가 형성되었다.
고산 윤선도(1567~1671)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이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탐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내 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성정함양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부용동은 그가 13년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가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동원림(명승 제34호)은 세연정을 비롯하여 최근 복원된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 등에 고산의 경관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적 조경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유적이다
2. 세연정(洗然亭)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고산연보(孤山年譜)」 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洗然亭), 동쪽에 호광루(呼光樓), 서쪽에 동하각(同何閣), 남쪽에 낙기란(樂飢欄)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