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연대도, 만지도

통영 연대도, 만지도 정보

연대도-만지도

연대도(烟臺島, Yeondaedo)는 통영시의 산양읍 연곡리에 있는 섬이다. 미륵도의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학림도, 서쪽으로 만지도 그리고 동쪽으로 오곡도가 인접해 있다. 중앙의 연대봉(220m)을 중심으로 원추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북서쪽의 완사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지형이 가파른 편이다. 해안은 북서쪽 해안은 모래와 자갈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높이 10m의 해식애로 이루어진 암석해안이다. 섬 북쪽에 연대도 패총(사적 제335호)이 있으며 신석기 시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일본 신석기 시대 토기들도 있어 당시 일본과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고성)에는 “연대도(煙臺島)는 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라고 수록하였고, 『성종실록』에는 연대도(延臺島)로 기록하였다. 『호구총수』에는 춘원면 연대도리(烟臺島里)였으며, 『1872년 지방지도』 중에서 당포진과 삼천진의 지도에는 연대도로 표시하였다. 『광여도』(고성)에는 조도연대(鳥島烟臺)로 나오는데, 조도는 북쪽에 인접한 학림도의 옛 지명으로 두 섬을 묶어 함께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명은 왜적의 침략에 대비한 연대가 산 정상에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연대봉에 유적이 남아 있다.

만지도(晩地島, Manjido)는 인근의 다른 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람이 입주한 섬이라는 데서 유래하여 늦은섬이라고 하며, 만지도(晩地島)는 한자지명이다. 또한, 섬의 형상이 지네와 같이 생겼다 하여 만지도(晩地島)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만지도(晩地島)는 지네에, 인근 북쪽에 위치한 저도(楮島)는 닭, 인근 동쪽에 위치한 연곡리 연대도(烟臺島)는 솔개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 사슬에 있어 함께 번성할 길지(吉地)라 한다. 저림리 저도마을 남쪽, 연곡리 연대마을 서쪽에 소재하고 있는 만지도(晩地島)는 면적이 0.232㎢이며, 해안선 길이는 2.0㎞이다. 통영시에서 남서쪽으로 10㎞에 있으며 동쪽에 연대도와 자란목도라는 암초로 연결되고, 북동쪽에학림도와저도,북쪽에대소장도(大小長島)와곤리도(昆里島),서쪽에추도,남쪽에내외부지도(內外夫支島)등이있다.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


금산 진악산 정보

진악산
충남 금산군의 남이면 성곡리·석동리·상금리·하금리와 금산읍 음지리·계진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732.3m).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서대산은 북방을 진수하고 진악산은 남방을 가리었다.”고 하고, 동일 문헌에 “진악산은 군의 남쪽 7리에 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 석혈(石穴)이 있는데 서너 걸음 들어 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산군지』(1969)에서는“진악산의 정기는 바로 금산의 정기로 동일시되어 왔다. (중략) 진악산은 금산의 수호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1987년 『금산군지』에도 “금산의 진산(鎭山)으로 금산의 정기를 대표하는 산이기도 하다.”라 하여 금산의 중심 산으로 진악산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악산이 금산의 진산 또는 주산으로 기록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여지도서』(금산지도)에 진악산이 있는 남쪽이 지도의 상단에 표시된 경우는 있다. 보통 고지도의 표현에서 지도의 위쪽에는 지역의 진산 또는 주산이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금산의 경우 지금은 그 이름조차 사라진 읍치 북쪽의 소산(所山, 비비미)이 진산이자 주산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설에는“진악이란 명칭이 즐거움이 크게 일어나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이 산만 지네만큼 남았다 하여 진악산이 되었다.” 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에는 관음봉·문필봉·노적봉· 물굴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관음봉은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산신령의 계시로 인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고 있는 학을 닮은 섬, 통영 학림도

통영 학림도 정보

학림도

학림도(鶴林島)는 통영시의 산양읍 저림리에 있는 섬이다. 미륵도의 남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저도, 남쪽으로 연대도와 인접해 있다.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활처럼 휜 모양을 하고 있어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해안선은 북쪽은 사빈해안, 남쪽은 암석해안이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조도(鳥島)는 춘원면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라고 수록하였다. 『호구총수』에도 춘원면 조도리로 적고 있다. 『조선지도』(고성), 『1872년 지방지도』(당포진)에는 조도로, 『광여도』(고성)와『영남지도』(고성)에는 남쪽에 인접한 연대도와 합쳐 조도연대(鳥島烟臺)로 표시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학림동(鶴林洞), 새섬으로 기록하였다. 조도, 새섬이라는 지명은 섬의 모양이 하늘을 나는 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여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위치한 노적사

북한산 노적사 정보

노적사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 이런 사찰을 승영사찰(僧營寺刹)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노적사도 승영사찰이었는데 당시에는 진국사(鎭國寺)라고 했다. 위치로 미루어 중성의 수축과 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성 축성 과정과 현황을 정리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진국사는 노적봉(露積峯) 아래에 있으며, 85칸으로, 승려 성능(聖能)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석불입상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으로, 옛 진국사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돌사자상만이 옛 진국사의 존재를 알려준다. 돌사자상의 몸통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으며 안장 위에는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 대좌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문수보살 동자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 노적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원효봉 + 백운대 + 태고사 + 노적사

3.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11-35

4. 사찰 관람 코스 : 노적사 입구 →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 운하교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노적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노적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노적사 여행기 및 사진

1. 노적사 입구

노적사-입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11 TEMPLE TOUR' 사찰인 태고사에 이어 노적사를 소개해드립니다. 현재 위치는 노적사 입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동문 2.4km, 노적사 →)인데요. 오른쪽 노적사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노적사-돌계단

▲ 노적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입니다. 돌계단 양쪽으로 露積寺(노적사)와 鎭國路(진국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공덕탑

▲ 공덕탑(功德塔)

노적사-노적봉

▲ 노적사와 노적봉입니다. 앞으로 보이는 전각은 보림루와 범종각이고 위쪽으로 대웅전이 있습니다.

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 계단을 오르기 전에 바라본 극락전(極樂殿)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梵鐘閣)과 보림루(保任樓)

2. 노적사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노적사-대웅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노적사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63호인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이 있습니다.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石獅子像)은 전통사찰로 지정된 북한산 노적산 대웅전 앞에 위치해 있다. 노적사의 본래 이름은 진국사로 조선 숙종 38년(1712)에 성능대사가 창건했다고 북한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으로 크게 훼손되었다가 1960년대부터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노적사 석사좌상은 사찰의 입구인 백운동 계곡에 있었으나 1970년대 북한산에 주둔하고 있던 군장병에게 발견되어 지금의 노적사로 옮기게 되었다. 사자상의 조각수법과 양식, 크기 등을 통해 볼 때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개를 틀어 옆쪽을 보고 있는 모습, 머리 부분부터 목선까지 조각된 갈기, 두터운 눈썹 아래에 툭 불거진 두눈, 다문 입술 사이로 드러난 뼈드렁니 등의 표현에서 해학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생김새를 볼 때 문수보살, 문수동자를 태운 좌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노적사 석사자상은 고양지역 유일의 석사자상 이라는 점, 석상의 조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점, 곳곳에 해학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웅전에서-내려다본-범종각-보림루-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범종각, 보림루, 극락전

동인당-나한전

▲ 동인당(東印堂)과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羅漢殿)

▲ 동인당, 약사미륵상, 나한전과 성림당 월산 대종사 기념비입니다. 월산 대종산 기념비 오른쪽으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는 것 같네요.

대웅전에서-내려가는-계단

▲ 대웅전에서 내려가는 계단

3.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과 보림루

노적사-대웅전

▲ 보림루에서 뒤돌아본 노적사 극락전, 대웅전

보림루-범종각

▲ 뒤돌아본 보림루와 범종각

공원문화유산지구-안내판

▲ 공원문화유산지구 안내판

전통사찰 노적사 일원은 사찰지이며, 국립공원 내 문화재 보전을 위해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공원문화유산지구는 국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탐방환경 조성을 위해 다수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전통사찰의 기여와 협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자연환경과 전통사찰의 수행환경 및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운하교

노적사-표지석과-운하교

▲ 노적사 표지석과 운하교

노적사-표지석

▲ 전통사찰 노적사 표지석

운하교

▲ 오늘은 노적사 입구에서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를 차례대로 둘러보고 운하교에서 블랙야크 '11 TEMPLE TOUR' 인증지인 노적산 탐방을 마쳤는데요.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바로 올라오실 경우는 운하교부터 시작해서 노적사 입구로 내려오시면 되겠습니다.

고려 후기 승려인 보우가 창건한 북한산 태고사

북한산 태고사 정보

태고사

고려 말기에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太古寺)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면,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